회사원 박수경(29)씨는 작년 7월 중학교 때부터 살아온 아파트를 나와 새로 지은 원룸으로 이사했다가 좋지 않은 경험을 했다. 미열과 몸살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사 후유증이라고 치더라도 팔다리에 빨갛게 돋아난 두드러기는 끔찍했다.
“피부과에 갔더니 알레르기성 피부염이라 하더군요. 평생 알레르기 걱정은 해본 적이 없는데 어이가 없었죠. 약을 먹고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어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제 증상이 이른바 ‘새 집 증후군’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간단히 말해 새로 지은 집에서 뿜어나오는 독소가 몸을 완전히 망가뜨린 거죠.”
◆ 병든 집에서 병드는 사람 만성 두통까지 얻게 된 박 씨는 결국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부모님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단어지만 미국과 유럽에서‘(Sick House Syndrome)’은 이미 많은 학자와 환경 운동가의 주요 관심사다. 직역하면 ‘병든 집 증후군’지만 집 안의 독소는 새 집일수록 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새 집 증후군’으로도 쓰인다.
한강성신병원 산업의학센터 오상용 소장은 “시멘트와 페인트, 벽지, 본드, 가구 마감재, 전자파를 뿜어대는 각종 기기 등 인간의 몸을 공격하는 요소를 집안에서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이 같은 자재에서 나오는 독소들이 사람의 몸에 나쁜 영향을 끼쳐 알레르기나 만성질환 등을 유발, 몸을 병들게 하는 것이 병든 집 증후군”고 말했다.
푸른 식물과함께 하는 청정한 집은 모두의 소망이지만 집, 특히 새로 지은 집은 몸을 공격하는 유해요소로 가득하다. 집안의 디톡스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천연 소재 마감재를 쓰며 새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사진 LG데코빌 제공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섭취하는 전체 물질 중 음식과 음료는 17% 밖에 되지 않고 공기가 83%, 그 중에서도 실내 공기가 57%를 차지한다고 한다. 유기농 채식을 챙겨 먹으며 식생활을 꼼꼼히 챙겨도 독으로 가득한 집에서 산다면 건강관리는 물건너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오 소장은 “새 집에 들어가기 전 입주자가 시공사에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며 “특히 발암 물질이면서 한번 쌓이면 제거하기 힘든 포름알데히드(방부 및 소독 살균용으로 쓰이는 독성이 강한 화합물)는 절대 검출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조항을 넣을 것”을 권했다.
◆ 환기와 천연 마감재로 독소 줄여야 ‘병든 집 증후군’을 일으키는 가장 큰 범인은 건축자재와 마감재에서 배출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이는 벤젠, 톨루엔, 아세톤, 포름알데히드 등 상온에서 가스형태로 존재하는 수백 종의 화합물을 일컫는 말로 건물을 지은 후 6개월까지 가장 많이 배출된다.
지난해 6월 서울 60평형대 아파트의 실내공기 성분을 측정한 경원대 건축설비학과 윤동원 교수는 VOC 총량이 1㎥ 당 최고 1.6㎎에 달한다는 검사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이는 VOC를 규제하는 유럽과 일본의 허용 기준치인 0.4㎎의 네 배에 달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막힌 사무공간에서 오래 근무하는 사무직 종사자에게 나타나던 ‘병든 건물 증후군’이 이제는 집으로 옮겨가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새집으로 옮겼다면 이사 후 6개월까지 하루에 서너 번, 30분 이상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리모델링을 하거나 도배를 다시 할 때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천연소재 마감재를 쓰는 게 바람직합니다.”
채 마르지 않은 시멘트와 페인트가 유해 가스를 뿜어대는 새 집이라면 살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몇 개월 동안 집을 비울 수 있는 여유를 갖기는 쉽지 않다. 윤 교수는 이 때 비상요법으로 쓸 수 있는 것이 ‘베이크 아웃(bake-outㆍ데워서 없애기)’이라고 덧붙인다.
입주 전 4~5일 동안 난방을 38~40℃로 올려 놓으면 시멘트와 마감재 등이 마르면서 채 빠져나가지 못한 유해가스가 함께 날아간다. 사이사이 창문을 활짝 열어 증발한 가스를 빼뺨?것을 반복한다.
창을 열기 쉽지 못할 경우에는 공기 청정기를 사용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다. 또한 집안에 관엽식물을 많이 두면 공기가 한결 맑아진다. 새집에서 나오는 휘발성 유해가스를 분해하는 아레카 야자, 악취를 줄이는 네프로레피스, 조리할 때 나오는 가스를 없애주는 스파티필럼과 벤자민 고무나무, 음이온을 뿜어 전자파를 막아주는 산세베리아 등 관엽식물은 집안의 공기 뿐 아니라 각종 독소를 줄여주는 일등 공신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 버릴 것들은 모두 독이다 2년 동안 입지 않은 코트, 5년 이상 처박아둔 대학시절 원서 교재, 1년에 한번 쓸까말까 한 립스틱, 앞으로 1년 이내에 들을 가능성이 없는 CD…. 쓰지 않고 쌓아만 두는 물건들은 먼지와 유해가스를 머금고 있는 만성 독소라고 보아도 무방하니 날을 잡아 과감히 정리한다.
입지 않는 옷 중 깨끗한 것은 ‘아름다운 가게’ 같은 재활용 센터에 기부하고 너무 낡았다면 버린다. 서재에 가득한 책이 높은 지적 수준의 척도인 냥 뿌듯해 하기 전에 그것들이 안고 있을 유해 요소들을 떠올려보자. 버리기 아까운 책은 헌 책방에 팔거나 지역 도서관에 기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몇 년 동안 거들떠보지 않은 음반은 다시 들어볼 필요도 없이 버린다. 1년 이상 열어보지 않은 화장품도 자리만 차지할 뿐 아니라 상했을 가능성이 크므로 과감히 버리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상자 가득 모아둔 화장품 샘플도 마찬가지다. 그 밖에 취미를 잃은 운동장비, 나이에 맞지 않는 장난감, 선물 받았다는 이유로 버리지 못한 채 먼지만 쌓여가는 각종 잡동사니도 정리 대상이다.
주방과 욕실도 유해 요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취사 연료가 타면서 나오는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이산화황 등은 자동차 배기가스와 별 다를 바 없다. 주부의 건강을 위한다면 음식 연기가 나지 않을 때도 레인지 후드를 틀어놓아야 한다. 방에 욕실이 딸려 있다면 샤워 후 수돗물에 섞인 살균 소독제가 방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욕실 문을 닫고 환기 팬을 틀어둔다. 소독제의 영향은 뜨거운 물에서 더 큰 만큼 샤워할 때는 미지근한 물을 쓴다.
◆ 새 물건에 대한 집착 버리자 유행이 지났다 싶은 자동차는 가차없이 바꾸고 싫증난다는 이유로 멀쩡한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이들이 흔한 세상이다. 게다가 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주민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집의 수명을 20년 안팎으로 단축시켰다. 그러나 무엇이든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의 수십 배에 달하는 독을 뿜어내기 마련, 건강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면 새 것에 대한 집착부터 버려야 한다.
참고서나 문제집 등은 새로 사야 하겠지만 한번 읽고 말 소설이라면 도서관에서 빌려 보거나 헌책을 사보는 것이 좋다. 새 인쇄물, 특히 두꺼운 종이에 찍힌 총천연색 동화책이나 잡지를 사서 바로 읽으면 휘발성 유기 화합물의 공격에 노출된다. 새 책이라면 바람이 잘 통하는 베란다에 며칠 동안 펼쳐 두었다가 읽는 것이 좋다. 갓 드라이클리닝 해온 옷도 마찬가지로 석유 냄새가 날아갈 때까지 환기가 잘 되는 곳에 걸어두었다 입어야 화학물질이 피부와 호흡기를 상하게 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