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백과사전

제목: 홧병

날짜 :: 2003-09-08
출처 ::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내용

김모(53세. 여)씨는 결혼한 후부터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호된 시집살이를 하고, 남편의 외도와 술 주정으로 인해 계속 고통을 받아왔다. 나이가 마흔을 넘어서면서 온몸에 열기(울화 또는 번열) 가 돌고 명치끝에 덩어리가 뭉쳐 치밀어 오르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과 눈물이 나오고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용하다는 병원을 모두 다녔지만 뚜렷한 병명이 없었다. 某 씨는 자신의 병이 '신경성' 또는 '한이 맺혀서' 생겼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중년이나 초로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경우 '홧병'이 있다고 말한다.

홧병은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화난 감정이나 분노를 상당 기간동안 적절히 처리하지 못 함으로 인해 종래에는 불안이나 우울을 동반하는 불안정한 심적 상태를 말한다.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 4 판에서는 '홧병 hwa-byung'을 문화관련 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으로 분류하여, '영어로는 anger syndrome으로 번역될 수 있는 분노의 억압과 관련된 한국인의 토속적 정신장애'라고 정의하였다. 서구인들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편이나, 우리는 감정을 억압하여 좋은 것을 좋다고도 하지 않고, 싫은 것을 싫다고도 하지 않는 특이한 문화를 지속해왔다. 이것이 한국인에만 있는 특수한 정신질환 '홧병'을 유발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원인으로는 남편과의 관계, 시부모와의 관계, 가난과 고생, 사회적 좌절, 경제적 몰락 등이 지적되어 왔으나 스트레스를 상당 기간도안 지속시키는 어떤 상황에 의해서도 유발될 수 있다. 현재의 IMF 체제하의 실직이나 경제적 상실감이 장시간 지속된다면 이 또한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홧병은 중년이후의 여성에서 흔히 발견되고, 기혼자에게 많고, 낮은 사회적 계층에 많은 만성적 경과를 보이는 병으로, 정신의학적으로는우울증과 신체화장애, 불안장애같은 정신장애가 겹쳐 나타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홧병의 증상으로는 불안, 우울, 강박증 등 일반적인 신경증적인 증상들과 더불어, 불면, 피로, 금방 죽을 것같은 공포, 소화불량, 식욕부진, 위산과다, 전신적인 통증,답답함, 열기(울화, 번열), 입마름, 치밀어오름, 가슴두근거림, 목이나 가슴에 덩어리가 뭉침, 한숨, 하소연, 뛰쳐나가고 싶음, 피해의식, 건강염려증, 충동성 등의 증상을 보인다.

홧병의 신체증상으로 인해 해당 진료과목을 찾아 다니지만, 환자 본인도 자신의 병이 스스로 표현하지 못한 울분과 분노와 연관된 것임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하고 있다. 이 울분과 분노를 적절하게 표현하게 하여 이로 인해 억눌렸던 개인의 삶을 되찾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화를 내게 한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말로써 풀어야 하는 것이다. 즉 막혔던 말문이 열리듯 엉어리져 가슴에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감정이 격한 행동으로 타인에 위해를 가하는 일없이 자신속에서 용납되고 자신속에서 화해가 이루어져야 한다. 옛 선인들은 민요, 판소리, 광대놀이, 굿, 민간 신앙속에서 이런 울분과 분노들을 풀어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홧병이 고혈압, 당뇨병, 간염, 심장병과 같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홧병에 대해서는 조사된 바는 없지만, 우울증 환자중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은 백 명에 네 다섯 명정도이다. 홧병은 불안을 동반하는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지않고 장시간 방치하면 만성적인 상태에 이르러 쉽게 회복되지않고 쉽게 재발되어 점점 치료가 어렵게 된다. 심리치료와 약물치료의 병행요법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꽤많은 홧병 환자들이 정신과 외래를 찾고 있다. 우울증이 주된 경우, 대략 4 - 6주간의 심리치료 및 약물치료를 통해서 대부분이 회복된다.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왜 여태까지 그런 고통속에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우리 문화도 서구화하면서 이전보다는 휠씬 감정표현이 자유로워져서 마음속에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감정을 담아두려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감정표현이 홧병의 예방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억압없이 즉각적으로 내뱉는 감정표현은 대인관계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홈페이지 바로가기 인터넷예약 바로가기